어느덧 백신접종률이 올라가고, 감염률은 뚝 떨어졌다.
뉴욕의 70% 인구가 접종되면 리오프닝을 한다는 둥, 8월달에는 블라지오가 센트럴파크에서 거대한 콘서트를 열어서 뉴욕의 컴백을 축하할거라는 둥,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아 보이는 희망적인 소식이 종종 들린다.
지금은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정상생활로 돌아가 돌이켜보면 정말 코비드 기간의 기억이 일생일대의 특이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어 기록을 해본다.
2월 초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 수업 시작. 졸업 작품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음 ㅎ
이미 이때부터 페이스북에서 우한에서 중국사람들 쓰러지는 동영상같은거 보고, 한국에도 조금씩 전파된다는 뉴스가 뜰때쯤이었다.
하지만 뭔가 막연하게 미국까진 못건너오겠지~ 하며 알콜 세정제나 손에 뿌리고 있었음.
(근데 현남편 구남친님은 이때부터 마스크, 화장지랑 소독제랑 음식을 벌크로 구매하심.)
그리고 3월 6일
뉴저지 본가에서 학교가려고 뚜벅뚜벅 걸어나가다 집앞에서 트럭에 치임 ㅠㅠ
이게 작년 7월에 한번 치이고 1년이 채 안돼 연달아 두번째.. 되니까 사람들이 조심을 안하냐고 ㅠㅠ
진짜 아니고, 두번 다 초록불에 멀쩡하게 길건너다가 생긴일..... (미국은 보행자 초록불일때도 좌회전차량들이 들어옴. 물론 보행자가 right of way를 갖고있기땜에 나한테 양보해야하는데 차들이 아몰랑하고 급하게 가다 박아버린거임)
비오는 날인데 그날따라 까만 패딩에 까만 레깅스, 까만 우산을 들고 가긴 했음 ㅠㅠ
트럭운전자가 제가 잘 안보였다네요
앞뒤 보고 건넜는데도 순식간에 코너돌던 트럭에 치임. 살다 처음으로 날라가봤다. 정말 다행인건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고, 궁딩이로 치였다는거. 정신차려보니 오른쪽 궁딩이가 시퍼랬다는..
관련 포스팅: 미국 교통사고 | 변호사 선임 및 물리치료 과정 - https://peanutvanilla.tistory.com/m/25
졸업 작품도 해야하는데.. 일도 해야하는데.. 내인생 망했어 ㅠㅠㅠ 하며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이번주는 어떻게 뺐다지만 앞으로 어떡하지… 좌절하던중
일주일 후
코로나가 미국에도 창궐했다며 2주 락다운이 실시되었다. 학교도, 밥집도, 모두가 닫았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같은 집순이에게 2주 쯤이야 푸하핫 하던 당시의 밈
그땐 정말 2주만 락다운하면 다 해결되는건줄 알고 희망찼는데.. ^^ 응 그렇게 두달이 되고.. 나중엔 일년도 넘어
그래도 나에겐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골절은 없었지만 허리 손상이 심해 7개월 가량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았으니 말이다. 일주일에 세번, 하루에 두시간씩 다녀오면 은근 하루 다 간다.
온라인 수업은 지금 돌이켜보면 학점 얻기에 껌이지만, 이때는 초창기라 교수님들도 당황해서 체계가 구축되어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카오스였고 초반 몇주는 교수와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난 Fail인건가..했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온라인 수업 덕을 보았다고 말할수 있다.
대학교 초창기에는 수업을 통해 경험과 의미를 찾고 싶어하지만 난 이미 다 겪었고, 마지막 학기는 패스를 하는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나는 학교에서 멀리살고(뉴저지에서 브룩클린ㅋㅋ 두시간 통학잼) 알바도 하던 중이라, 왔다갔다 통학하는게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리치료도 받았어야 했으니, 어떻게 보면 불행중 다행으로 풀린 셈이었다.
코로나 초반에는 지하철이나 버스타기도 무서워서 아무도 대중교통을 안탔기땜에.. 다치기도 했고 해서 그당시 남자친구랑 강제로 견우직녀꼴이 났다 ㅠ
마트에 가도 이상한 긴장감과 공격적인 분위기가 느껴졌음. 진짜 영화에 나오는 아포칼립스 분위기.
한국은 화장지가 그렇게 핫하지 않았다던데, 여기는 라면이랑 화장지가 다 떨어져서 살수가 없었음. 파스타 면도 없었던듯.
미국마트가면 동양인인 우리를 째려보고 시비걸기도 했음. 나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으나 우리엄마는 길거리에서 싸우기도 하고 그랬네요.. ㅠㅠ
하도 답답해서 아직 추운 봄이었는데도 굳이 라면을 밖에서 끓여먹음. (근데 사실 락다운 며칠 안한 상황 ㅋㅋㅋ)
집에서 인턴쉽 원격근무하고, 그와중에 남친이랑 페이스타임하고, 낮술하던 일상
근데 위 사진은 이불정리도 안하고 인간적으로 방이 너무 더럽게 나왔다 ㅎㅎ 내방 저정도는 아닙니당..
팬데믹 초창기때 제일 많이 들은 노래는 도자캣의 핫핑크 앨범 수록곡들 ㅎ
덕분에 도자캣 노래만 들어도 락다운 2달이면 곧 일상으로 돌아갈거라 생각하고 편하게 쉬던 그때의 나른한 기억이 휘몰아침.
이때는 아직 배가 불러서 네일 못받는게 불만이었음
결국 못참겠다 꾀꼬리하고 아마존에서 셀프 젤 네일아트 키트를 오더했음.
결론: 돈주고 하는덴 이유가 있다. 바르는 것 까진 괜찮은데, 다음에 새로 바를때 젤매니큐어 제거가 넘 힘들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리커스토어에서 파는 밤막걸리 득템.
맛있었다. 근데 달달해서 호로록 마시다 뿅감 ㅠ_ㅠ
삼계탕은 영화 관상의 조정석 백숙먹방을 본뒤에 '내가 조선시대 잡놈이다' 생각하고 감정이입해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
졸업식 설마설마 했는데.. 가상 졸업식 한다고 각자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학사모 졸업가운 입고, 학사모 데코레이션하려고 엄청 기대했었는데.. ㅠㅠ
학사모 컨셉 고민하면서 모아뒀던 참고 사진들...
어떻게 고생해서 졸업한 학교인데 ^^; 허무 시시하게 가상졸업식이라닝...
유튜브 생방으로 학생 한명한명 씩 호명하면서 내 차례땐 내 슬라이드가 뜨는거였음.
사진한장이랑 메시지 입력할수 있더라구요.
그래서 학사모 꾸미기 대신에 졸업사진을 마구 꾸미기 시작함 ㅋㅋㅋ
배경에 나와있는 그래픽들은 수업시간에 과제로 만들었던 그래픽패턴들 하고 캐릭터들 ㅎㅎ
미스 토일렛페이퍼 같쥬?
그렇게 졸업하고 어느덧 여름. 학교도 끝났겠다 OPT 시작일까지 3달이나 남았겠다-, 탱자탱자 놀기 시작함.
우리집 뒤뜰엔 살충제를 안뿌려서 모기가 너무 많아 늘 거기까지 못가고 옆뜰에서 놀음.
뉴저지나 플러싱같은 suburb에서 모기 물리면.. 정말 대단해요. 한번에 열방씩 물고, 모기 생긴것도 뭔 제트기같이 생김.
코로나니까 집에서 요리도 많이하고..
집에서 생선 구웠다가는 예민한 남동생 난리납니다.
코로나동안 백수였던지라 엄마랑 싸우면 집에 먹을게 없었다 ㅋㅋㅋ 냉장고 긁어모아 강제 다이어트식
동네에 한국사람 없다보니까 더워서 과감한 잠옷바람으로 돌아다녀도 창피함도 없는 나 ㅋㅋ (돌아다녀봤자 우리집 안이긴 한데여.. 옆집 분들이 다 보고있음) 2020년 여름은 정말, 정말, 기록적으로 더웠음.
안그래도 락다운땜에 실내에서 놀곳도 없는데 더욱 힘들었다랄까 ㅠ_ㅠ
난 물리치료원이라도 다녀서 다행이었다. 너무 갈곳이 없고 소통할 사람이 없다보니까, 물리치료라도 꼬박꼬박가서 선생님들이랑 대화하고, 마사지받고 치료받고 운동하고 집에 오는게 소셜라이징의 전부였음 ㅋㅋㅋ (가족은 카운트하지마세여.. 안싸우면 다행)
백수에게 손을 내밀어준 나의 친한언니 덕분에 아웃도어를 오픈한 레스토랑에서 메디터레니안 요리도 먹음.
이 당시에는 뉴욕이든 뉴저지든 outdoor sitting만 식사를 할수있었죵.
근데 맨하탄은 워낙 길거리에 자리가 없어서 지저분했고, (밥먹다 바퀴벌레랑 생쥐 어택 많이 당했음)
오히려 아웃도어 자리가 많은 로컬식당들이 잠깐 핫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름 중순에 슬슬 취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진짜.. ㅋㅋ 코로나땜에 잡포스팅 올라온것도 별로 없었고, 신입을 구하는 광고는 더더욱 없었으며,
주니어 포지션 구해도 경쟁이 너무 심해서 시니어들이 신입자리에 마구 지원을 하던 터라, 나같은 대학졸업생들은 손가락을 빨던 분위기였다..
그래도 열심히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웹사이트도 만들고, 레주메도 뿌려서 여러번 원격 면접을 보았당.
지금은 원격으로 미팅을 워낙 많이해봐서 안그럴텐데, 그땐 너무 떨어서 많이 불합격했다 ㅠㅠ
지금 생각해보면, 서류 통과까지 했으면 꽤 괜찮은거였는데 말이당.
나의 화상면접 go-to 아웃핏 ㅋㅋㅋ 줌으로 면접을 보다보니, 얌전한 버튼다운 셔츠같은 것은 화상채팅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걸 깨달음. 그래서 프릴달린 셔츠입고 착한척 안경까지 썼닼ㅋㅋㅋㅋ 결국 나중에 이 착장으로 면접에 합격했당
이쯤되면 내가 초록색을 매우 좋아하는 그린덕후라는 것을 알겠쥬? ㅋ_ㅋ
이렇게 보니까 유유자적해보이지만 어느때보다 바쁜 한해였다. 락다운했는데 이민국 연락와서 서류보충하고 대사관 왔다갔다하고.. 치료원 다니고 검사다니고, 학교 졸업작품땜에 피가 말랐고 ㅠㅠ
엄마는 병원에서 코비드 환자 돌보느라 옮을까봐 매일 퇴근때마다 방역하고 난리치고.. (결국 한번도 안옮았다)
거기다 OPT 신청까지 하는데, 그 모든게 코로나땜에 제한이 많았어서 저엉말 아찔하게 아슬아슬하게 해결된 일들이 많았다.
이렇게 뉴저지에서 2020의 상반기를 보냈다.
그리고 여름쯔음에는 그래도 봄때보다 긴장이 많이 풀려서 렌터카로 남자친구가 픽업을 왔다.
남자친구 사는 맨하탄으로 넘어가서 보냈던 코로나 일상은 2020년 코로나 당시 나의 일상 기록 - 2 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음!
관련 포스팅 보기
미국 교통사고 | 변호사 선임 및 물리치료 과정 - https://peanutvanilla.tistory.com/m/25
'New York > Dail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욕 | Throw back | 나는 2017년이 그립다아 (2) | 2021.06.26 |
---|---|
미국 뉴저지🌿 학생때의 추억들 | 방구석 스파 명상 데코 (0) | 2021.06.22 |
뉴욕 | 레트로 색감이 넘치는 Coney Island (4) | 2021.06.12 |
뉴욕 | 2020년 코로나 당시 나의 일상 기록 - 2 (1) | 2021.06.10 |
미국 생활 | 해장 콩나물 국밥 레시피 (0) | 2021.04.26 |